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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호의 '백골동', 투명한 반닫이로 빚은 공생패션 디자이너이자 공연 연출가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정구호가 이번에는 조형 예술가로서 전통 가구의 현대적 변주를 선보인다. 서울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 오는 26일부터 한 달간 열리는 개인전 '백골동(白骨銅)'은 가구의 뼈대를 의미하는 백골과 금속 장식을 뜻하는 동을 결합한 제목 아래, 그의 대표 연작인 '공생'의 신작 15점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전통 목가구가 지닌 구조적 아름다움에 현대적 산업 재료를 접목하여 시대와 가치가 교차하는 지점을 탐구한다.작가의 영감은 영화 '황진이' 미술감독 시절 목격한 구한말 개성 기생의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 사진 속 기생 뒤로 병풍처럼 놓인 화려한 개성반닫이들은 그가 알던 절제의 미학과는 또 다른 한국적 화려함을 일깨웠다. 정구호는 이 강렬한 인상을 바탕으로 현대적 소재인 투명 플렉시글라스를 활용해 반닫이의 형상을 빚어내고, 그 위에 실제 전통 가구에 쓰이던 금속 장석을 부착하는 작업을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이는 과거의 유산과 현대의 물질이 하나의 오브제 안에서 공존하는 방식을 시각화한 것이다.작업의 핵심은 가치의 재발견에 있다. 한때 귀한 가구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쓰임을 잃어가는 전통 장석과, 활용도는 높지만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산업 재료인 플렉시글라스의 결합은 묘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정구호는 기능은 사라졌으나 가치는 남은 것과, 기능은 충실하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재료를 섞어 새로운 예술적 관계를 설정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을 소모하고 있는지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얻게 된다.특히 이번 연작에서 강조된 플렉시글라스의 투명성은 반닫이라는 가구가 지닌 본질적인 속성을 뒤집는 장치다. 본래 반닫이는 귀중품을 안에 숨기고 보호하는 폐쇄적인 가구이지만, 정구호의 반닫이는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감춤의 미학을 드러냄의 미학으로 전환한다. 투명한 구조물은 관람객에게 내부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가 지닌 본연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이는 장식과 뼈대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다.정구호는 1980년대 패션 브랜드 'KUHO'를 통해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정착시킨 이후, 영화와 공연계에서도 한국 전통의 현대적 해석으로 큰 호평을 받아왔다. 국립무용단의 '묵향'이나 서울시무용단의 '일무' 등에서 보여준 절제된 무대 연출은 그를 한국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반열에 올렸다. 최근에는 키아프 서울의 총괄 디렉터로서 미술 행정가로 활약하는 동시에, 이번 전시처럼 꾸준한 개인 작업을 통해 시각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다져나가고 있다.전시 '백골동'은 정구호가 평생을 바쳐 탐구해온 한국적 미학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패션과 무대라는 찰나의 예술을 넘어, 조형물이라는 영속적인 매체를 통해 그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통은 박제된 과거가 아니라 현대의 재료와 호흡하며 끊임없이 재생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성수동의 현대적인 전시 공간에서 마주하게 될 투명한 반닫이들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교로서 관람객들에게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공생의 경험을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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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맨리, 서핑 성지서 만난 '요정의 풀장'시드니 서큘러 키에서 페리를 타고 도착한 맨리 선착장 앞 거리는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10분이면 충분히 가로지를 만한 짧은 구간이지만, 시드니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독특한 의류 숍과 기념품 가게, 그리고 고풍스러운 빅토리아 시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어 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다. 특히 호주 토종 식재료와 소스를 취향대로 골라 담는 스마트 시스템의 '요치' 아이스크림 가게는 한국인 관광객들에게도 필수 코스로 통한다. 10여 종의 아이스크림과 수십 가지 토핑이 만들어내는 수백 가지의 조합은 맨리 거리의 활기찬 분위기를 대변한다.거리 끝에서 마주하는 맨리 해변은 '서핑의 성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역동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이곳의 파도는 숙련된 서퍼들이 터널을 통과하는 장관을 연출하며 마치 컴퓨터 배경화면 속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5년 역사의 맨리 서프 스쿨은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아우르는 레슨을 연중무휴로 제공하며 전 세계 서퍼들을 불러모은다. 거친 파도에 몸을 던지는 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스트레스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다.해변의 역동성을 즐겼다면 인근 맨리 미술관 및 박물관(MAG&M)으로 발길을 옮겨 문화적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1930년에 설립된 이곳은 노던 비치 지역의 시각 예술 중심지로, 호주 예술가들의 삶과 도자기, 해변의 역사를 담은 상설 컬렉션을 선보인다. 특히 미술관 내 디자인 숍에서는 지역 장인들이 직접 만든 작품만을 판매하고 있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기념품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보물창고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은 맨리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예술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맨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오면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거친 파도가 자취를 감추고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하버 국립공원의 초입, 콜린스 플랫 비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곳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 고요하며, 작은 민물 폭포와 숲이 어우러져 가족 단위 피크닉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얕은 물가에서 반영 사진을 찍거나 숲속 바위 사이를 거닐다 보면 도시의 번잡함은 어느새 잊히고 만다. 맨리의 거친 매력이 '안보현' 같다면, 이곳의 순한 맛은 '차은우'에 비유될 만큼 평화롭다.하버 국립공원의 걷기 여행은 자연과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지난다. 1929년에 조성된 자연 바위 풀장인 '페어리 바우어 록풀'은 바다의 요정 조각상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도브로이드 헤드의 아라바누 전망대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선 태평양의 광활한 수평선과 함께 운이 좋으면 고래가 유영하는 모습까지 관찰할 수 있다. 특히 1910년에 세워진 그로토 포인트 등대는 '디즈니 캐슬'이라는 별칭답게 하얀 바탕에 붉은 무늬가 돋보이는 자태로 밤낮없이 여행자를 유혹한다.국립공원의 진정한 가치는 그로토 포인트의 사암 벽에 새겨진 원주민 암각화에서 정점을 찍는다. 수천 년 전 사냥꾼과 어부, 그리고 캥거루와 고래의 모습이 놀랍도록 잘 보존된 이 유적은 호주의 뿌리를 되새기게 한다. 하버 브리지를 건너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기 전, 해마를 닮은 곶 끝에 서 있는 혼비 등대까지 둘러본다면 맨리와 하버 국립공원의 속살을 제대로 확인한 셈이다. 유명세에 비해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이곳은 시드니 자유 여행의 진정한 백미로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