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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즈 사러 줄 서는 미술관 오픈런 大유행예술을 감상하는 공간이었던 미술관과 박물관이 이제는 가장 세련된 쇼핑 명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최근 서울의 주요 전시장 앞에는 새벽부터 수백 명의 인파가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이들의 목적은 작품 관람이 아닌, 특정 작가와 협업한 한정판 상품을 손에 넣는 것이다. 유명 그래픽 아티스트나 K-팝 스타의 브랜드와 손잡고 출시된 굿즈들은 공개와 동시에 매진 사례를 기록하며, 예술 소비의 중심축이 '관람'에서 '소유'로 이동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이러한 변화의 선두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자체 브랜드 '뮷즈(MU:DS)'가 있다. 과거 기념품 수준에 머물렀던 박물관 상품은 현대적 감각을 입으면서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2025년 역대 최대 매출인 400억 원 시대를 연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전년 대비 두 배 가까운 성장세를 보이며 신기록 경신을 예고했다. 특히 방탄소년단(BTS) 멤버가 소장해 화제가 된 반가사유상 미니어처나 술을 부으면 색이 변하는 취객선비 잔 세트는 전통 유물을 힙한 아이템으로 재탄생시킨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미술관 굿즈 역시 예술성과 희소성을 무기로 애호가들의 지갑을 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데이미언 허스트와 같은 세계적인 거장의 작품을 모티브로 한 마그넷과 도록 등이 판매 순위 상위권을 휩쓸었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아트 오브제나 소형 조각들도 원작을 직접 소유하기 어려운 컬렉터들에게 '멀티플 아트'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인기를 끈다. 이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가치를 일상으로 끌어들이려는 가치 소비 트렌드가 반영된 결과다.사립 미술관들의 행보도 거세다. 리움과 호암미술관은 대량 생산 방식에서 벗어나 유명 작가와의 협업을 통한 프리미엄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김윤신, 이불 등 거장들의 감성이 담긴 파우치나 키링은 나오기가 무섭게 품절되며 높은 객단가를 기록하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의 자개 텀블러처럼 지역적 특색과 전통 공예를 접목한 상품들은 내국인뿐만 아니라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구매 목록에 이름을 올리며 K-컬처의 새로운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굿즈 열풍의 주역은 단연 2040 세대다. 이들에게 굿즈는 단순히 물건을 사는 행위를 넘어, 자신의 예술적 취향과 경험을 인증하는 수단이다. 한정된 장소와 시간에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을 소유함으로써 얻는 자부심은 SNS를 통해 공유되며 타인의 소비 욕구를 자극한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신념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닝아웃' 문화가 예술계와 만나면서, 박물관 굿즈는 이제 가장 트렌디한 자기표현의 도구가 되었다.일부에서는 문화예술의 지나친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굿즈는 높은 문턱으로 느껴졌던 예술을 대중의 일상으로 끌어내리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거장의 작품을 내 방 책상 위에 올려두고 즐기는 '스몰 럭셔리' 심리는 리셀 시장의 활성화와 맞물려 문화 상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중이다. 전시의 여운을 간직하려는 관람객들의 욕망이 굿즈라는 실체를 통해 분출되면서,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제적 자립도와 대중적 영향력은 당분간 지속적인 상승세를 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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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정호 수위 저하가 깨운 천년의 역사올해 봄부터 이어진 기록적인 가뭄과 늦어진 장마로 인해 섬진강 옥정호의 수위가 눈에 띄게 낮아졌다. 거대한 호수가 품고 있던 물줄기가 잦아들면서 정읍 산내면 종성리 황토마을 일대에는 평소 보기 힘들었던 역사의 흔적들이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옥정호 하류 지역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운암댐부터 조선시대 궁중 의녀 대장금의 설화까지 층층이 쌓인 시간의 기록을 간직한 곳이다. 수위 저하로 인해 드러난 거친 암반과 옛 제방의 자취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단순한 풍경 이상의 묵직한 서사를 전달하며 새로운 인문학 탐방지로 주목받고 있다.황토마을 언덕 위에는 1928년 일제가 운암댐을 축조하던 해에 세워진 난국정이 호수를 굽어보고 있다. 당시 호남의 선비들은 이곳에 모여 수몰되는 고향의 산천을 바라보며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다졌다고 전해진다. 1965년 섬진강댐 준공으로 한때 수몰 위기에 처했던 이 정자는 현재의 높은 지대로 옮겨져 옥정호의 변천사를 묵묵히 지켜보고 있다. 난국정에서 황토섬으로 이어지는 250m의 제방을 걷다 보면, 호수 한가운데 수몰된 옛 운암댐의 위치와 그 옆에 외롭게 서 있는 '운암호' 기념비가 가뭄이 만든 낮은 수면 위로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정읍 산내면은 역사적으로도 예사롭지 않은 터전이다. 조선시대 중종의 후궁 희빈 홍씨를 따라 입궐했다는 대장금의 고향 '너디마을'과 '수침동'이 바로 이곳 옥정호 수면 아래 잠겨 있다. 삼국시대부터 중국 사신들이 머물던 교통의 요지였던 이 지역은 일찍부터 의술과 가무, 음식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황토섬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옛 성황당 흔적과 울창한 대나무 숲은, 대를 이어 전승되었을 무녀들의 의례와 전통 문화의 기억을 희미하게나마 증언해 준다. 비록 마을은 물 밑에 가라앉았지만, 천 년 전 예언적인 지명인 수침동(水沈洞)은 오늘날 호수가 된 풍경과 기묘하게 맞닿아 있다.마을 주민들의 기억 속에는 댐 건설 당시의 고단했던 삶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운암댐을 쌓기 위해 주변 산에서 단단한 돌을 골라 사각형으로 다듬어 운반하던 모습은 노인들의 입을 통해 어제 일처럼 전해진다.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진 돌들은 마을의 담장이나 밭의 경계석이 되어 여전히 황토마을 곳곳을 지키고 있다. 또한 6·25 전쟁 당시 회문산 빨치산의 공격으로부터 댐을 지키기 위해 상주했던 군경 부대의 흔적은 '오중대'라는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 남아, 평화로운 호수 마을이 겪어야 했던 격동의 현대사를 조용히 웅변한다.옥정호의 역사는 1928년 준공된 운암댐에서 1965년 완공된 섬진강댐으로 이어진다. 일제가 호남평야의 수탈을 위해 처음 물길을 막았던 운암댐은 더 큰 규모의 섬진강댐이 들어서면서 그 역할을 넘겨주고 수중으로 사라졌다. 현재의 옥정호는 칠보발전소를 거쳐 동진강으로 흐르며 여전히 호남평야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수많은 마을의 수몰과 주민들의 이주라는 아픈 희생이 깔려 있다. 임실 강진면 용수리에서 바라본 섬진강댐의 거대한 위용은 그 아래 흐르는 세월교의 낮은 풍경과 대비되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최근 옥정호 상류의 붕어섬과 출렁다리가 화려한 관광 명소로 떠오르고 있지만, 하류 지역이 품은 인문학적 가치는 그에 못지않다. 수위가 낮아진 틈을 타 드러난 옛 길목과 성황당의 흔적, 그리고 댐을 지키려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옥정호를 단순한 저수지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로 만든다. 가뭄이 가져온 역설적인 기회는 우리에게 잊혔던 대장금의 고향과 근현대사의 숨결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옥정호 하류의 황토마을 일대가 자연과 역사가 공존하는 깊이 있는 탐방지로 거듭나, 물속에 잠긴 소중한 기억들이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