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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 팝콘 먹고 토론까지…'시체 관극' 박살 낸 7시간 반의 혁명7시간 30분이라는 경이로운 러닝타임, 그리고 네 번의 인터미션 동안 제공되는 간식과 식사. 관객은 더 이상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극장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대 위에 놓인 게임 컨트롤러를 잡고, 약 200명의 다른 관객과 힘을 합쳐 주어진 퀘스트를 해결해야만 한다. 이는 최근 대학로 무대에 올라 전석 매진을 기록한 관객참여형 공연 '에세즈 메세즈: 당나귀들의 반란'의 풍경이다. 2023년 아르헨티나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 각국을 돌며 화제를 모은 이 독특한 형식의 공연은, 기존의 관람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며 새로운 집단적 체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공연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낯설게 다가온다. 티켓 부스와 포토존이 전부였던 평범한 공연장 로비와는 달리, 이곳에는 정수기와 팝콘, 그리고 각종 사탕과 젤리가 가득 담긴 간식 상자가 관객을 맞이한다. 벽에는 공연이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으며, 두 개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휴식과 함께 음식물이 제공된다는 친절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사탕 한 알 입에 넣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고, 숨소리마저 죽여야 하는 '시체 관극' 문화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게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풍경이다. 공동 연출가인 패트릭 블렌카른과 밀턴 림은 이러한 파격적인 구성의 의도를 "컨트롤러를 쥔 관객이 리더가 되고, 그 리더에게 반대 의견이 있어야 객석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공연의 서사는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연상시킨다.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당나귀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혁명을 일으키는 여정을 '포켓몬스터'를 연상시키는 친숙한 그래픽의 비디오 게임 형식으로 풀어낸다. 공연이 시작되고 잠시의 적막이 흐르던 것도 잠시, 한 용감한 관객이 무대 위로 올라가 컨트롤러를 잡자 비로소 7시간 반의 대장정이 막을 올린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만 보며 머뭇거리던 관객들은 에피소드가 하나둘 진행될수록 점차 자리를 자유롭게 오가며 적극적으로 게임에 개입하기 시작한다. "갈 길이 멀어요, 파이팅!"과 같은 응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게임 참여자의 결정에 박수가 쏟아진다. 심지어 인터미션 시간에는 로비에 삼삼오오 모여 간식을 즐기며 '동물권'과 '노동'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벌이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예정된 종료 시간을 훌쩍 넘겨 오후 8시 10분, 마침내 마지막 퀘스트가 해결되자 객석에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200여 명의 집단지성이 빛을 발한 덕분에 예상보다 20분이나 일찍 기나긴 여정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7시간 반 동안 함께 고생한 동료 관객들을 위한 마지막 선물은 바로 시원한 맥주 한 잔. 관객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면서도 무언가 큰일을 함께 해냈다는 성취감과 흥분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극장 문을 나섰다. 이 기묘하고도 특별한 경험은 단순한 공연 관람을 넘어,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소멸하는 과정을 압축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독특한 기억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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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는 영하권인데 여긴 '동백꽃 필 무렵'…12월 제주가 미쳤다!육지가 본격적인 한파로 접어드는 12월, 제주는 영상 19도까지 오르는 봄 같은 날씨로 여행객을 유혹한다. 동지섣달에도 붉은 동백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곧이어 피어날 수선화와 매화가 꽃망울을 단단히 여미는 이곳은 겨울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다. 혹한을 피해 실내에만 웅크리기 쉬운 계절이지만, 탐라의 온기 속에서는 오히려 육지에서 즐기기 힘든 역동적인 겨울 액티비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애월의 산기슭을 중력만으로 질주하는 레이싱부터, 억새와 동백이 공존하는 필드에서의 골프, 겨울 바다에 용감하게 뛰어드는 펭귄 수영대회까지, 제주의 겨울은 지루할 틈이 없다.제주의 겨울을 가장 역동적으로 즐기는 방법 중 하나는 애월의 9.81파크에서 무동력 그래비티 레이싱(GR)을 즐기는 것이다. 엔진 없이 오직 중력과 경사, 운전자의 테크닉만으로 스피드를 겨루는 이 레이싱은 탑승 횟수를 거듭하며 기록을 단축하고 등급을 올리는 재미가 쏠쏠해 MZ세대는 물론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편, 한라산 자락에 위치한 더시에나 컨트리클럽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은빛 억새의 파도와 스페인풍 분홍빛 동백의 정열을 동시에 감상하며 즐기는 겨울 라운딩은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다. 특히 급격한 오르막 경사 탓에 '김일성 홀'이라는 악명 높은 별명이 붙은 17번 홀을 정복하고 나면, 그 어떤 겨울 추위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게 된다.조금 더 차분하게 제주의 겨울 자연을 만끽하고 싶다면, 섬 곳곳에 펼쳐진 꽃길을 산책하거나 특별한 겨울 축제에 참여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안덕의 카멜리아힐, 성산의 삼달리, 남원의 동백 포레스트 등은 땅에 떨어진 꽃잎마저 붉은 융단처럼 깔려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오는 12일부터 25일까지 함덕해수욕장에서 열리는 '비치 크리스마스'는 바닷가에서 즐기는 이색적인 크리스마스 풍경을 선사하며,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1월 1일 중문색달해변에서 열리는 '서귀포 겨울바다 국제펭귄수영대회'다. 차가울 것이라는 편견과 달리 의외로 포근한 겨울 바다에 몸을 던지며 새해의 각오를 다지는 이색적인 경험은 오직 제주에서만 가능하다.물론 격렬한 활동만이 제주의 겨울을 즐기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눈 덮인 한라산 등반이 부담스러운 평범한 여행자라면, 걷는 것만으로도 치유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후기가 자자한 '서귀포 치유의 숲'에서의 고즈넉한 산책이 제격이다. 울창한 숲길을 천천히 거닐며 맑은 공기를 마시다 보면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절로 씻겨 나간다. 여기에 더해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주목받은 갓 전시관이나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국립제주박물관 등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인문학, 아트 투어를 곁들인다면, 그 어떤 계절보다 풍성하고 깊이 있는 제주 겨울 여행을 완성할 수 있다.




















